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엘 알라메인 전투 (문단 편집) === 결과 === '''독일은 북아프리카 전역을 유지할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.''' >내 군대를 구해내자니 머리가 터질 지경이오. 우리는 지금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날들을 눈 앞에 두고 있소 >PS. 죽은 자들이 행운아요, 모든 것이 끝났으니까... >-[[에르빈 롬멜]] 장군,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중 한편 영국군도 하루만에 [[중대(군대)|중대]] 몇 개가 소멸하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. 어떤 영국군 장교는 "이겼는데 이겼다는 기분이 안든다."고 말했을 정도다. 독일군의 사상자는 3만 명에 포병 전력은 전체의 85~90%가 괴멸되었다.[* 타군의 포병대와 달리 당시 대부분의 독일 포병대는 대전차포병(88대공포병)이었기에 전차와 전면전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.] 반면 영국군의 사상자는 1만 5000명이었는데 문제는 기갑 전력의 피해가 극심하여 상당수의 영국군 기갑 부대가 아예 전멸해 버렸을 정도다. [* [[콜 오브 듀티 2|이 전투를 묘사한 모 게임에서]] 영국군 전차가 20대로 시작해서 미션 끝날 때 2대만 남는게 현실에서 '''더 큰 피해로, 더 높은 수치로 매일마다''' 일어났다는 것...] 아무튼 이 승리로 몽고메리는 영국 최고의 [[육군]] 지휘관으로 부상했고 후에 [[원수(계급)|원수]]까지 오르지만, 여기서 "밀어붙이면 다 된다"와 "병사는 소모품"이라는 고집을 가지게 되어, 결국 [[마켓 가든 작전]]의 대참사를 부르게 된다.[* 사실 이건 몽고메리 특유의 독선적이고 오만한 성격까지 겹쳐진 문제다. 마켓 가든 작전은 실행 전에 참모들과 일선 지휘관들의 반발과 걱정이 있었지만 몽고메리는 듣지 않고 무시했다.] 롬멜은 [[북아프리카 전역]]의 철수를 결정하고 전쟁물자와 부대들을 북아프리카에서 탈출시킨다. 같은 해 11월에는 미국 - 영국, [[자유 프랑스]]군이 모로코의 [[카사블랑카]] 해안지대에 상륙작전을 감행한 [[횃불 작전]]이 성공했다. 이후 연합군은 1943년 5월 13일에 튀니지 전역에서 승리함으로써 [[북아프리카 전역]]은 막을 내리게 된다. 엘 알라메인 전투는 같은 해 6월의 태평양 전선의 [[미드웨이 해전]], 이듬해 1월까지 이어진 [[스탈린그라드 전투]]와 더불어 연합군이 1942년에 거둔 값진 승리이자 2차대전의 전환점 중 하나였다. 이는 엘 알라메인 전투에 대한 [[윈스턴 처칠]] 당시 영국 수상의 다음 두 어록에서도 잘 드러난다. >'''"비록 이번 승리가 전쟁의 끝, 혹은 '끝의 시작'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, '시작의 끝'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.'''"[* 간단히 말해서 "적어도 최악의 고비는 넘겼다"는 정도의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다.] >'''"엘 알라메인 이전까지 우리는 승리를 맛보지 못했지만, 엘 알라메인 이후에는 더 이상 패배를 맛보지 않았다.'''"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